검색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한국수어 사전 찾기
자세히 찾기
일러두기
한국어로 찾기
수형으로 찾기
일상생활 수어
인간
삶
식생활
의생활
주생활
사회생활
경제생활
교육
나라명 및 지명
종교
문화
정치와 행정
자연
동식물
개념
기타
전문용어 수어
법률
교통
의학
정보통신
불교
천주교
기독교
국어 교과 용어
경제
정치
문화정보 수어
국립 중앙 박물관
국립 민속 박물관
국립 한글 박물관
국립 경주 박물관
국립 공주 박물관
국립 부여 박물관
국립 진주 박물관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
국립 과천 과학관
국립 광주 박물관
국립 김해 박물관
국립 대구 박물관
국립 전주 박물관
국립 제주 박물관
국립 청주 박물관
부산 시립 박물관
국립 나주 박물관
국립 춘천 박물관
자료실
공지사항
의견보내기
문화정보 수어
일상생활 수어
전문용어 수어
문화정보 수어
국립 진주 박물관
전체
국립 중앙 박물관
국립 민속 박물관
국립 한글 박물관
국립 경주 박물관
국립 공주 박물관
국립 부여 박물관
국립 진주 박물관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
국립 과천 과학관
국립 광주 박물관
국립 김해 박물관
국립 대구 박물관
국립 전주 박물관
국립 제주 박물관
국립 청주 박물관
부산 시립 박물관
국립 나주 박물관
국립 춘천 박물관
저울처럼 공평한 사회, 형평운동
0.5배속
1배속
해상도 선택
고화질
저화질
유물 사진
한국어 정보
조선시대 백정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았습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백정은 비로소 공식적으로 신분 차별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삶의 터전, 말투, 옷차림, 교육 등 일상 생활에서는 여전히 사람다운 취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백정들은 ‘형평사’라는 조직을 만들어 자신들의 인권을 보장받기 위한 ‘형평운동’이라는 사회운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형평사’란 ‘저울처럼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단체’라는 뜻을 담고 있었습니다. 형평운동은 진주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퍼져 나가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형평 조직원 내부의 입장 차이와 일제의 압력 등으로 본래의 뜻을 모두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이 보여준 정신과 인권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 소외받는 사람의 인권을 보호하는 사회 운동으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저작자를 밝히면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하지만, 영리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고 변경 없이 그대로 이용해야 합니다.
의견 보내기
이전
다음
목록
의견 보내기
보안문자
새로 고침
이름
동영상 첨부
파일 선택
*수어로 의견보내기를 원하시는 이용자는 동영상을 촬영하여 이 곳에 첨부해주세요.
의견 내용
의견 보내기
취소
수어용례 영상
닫기
일러두기
즐겨찾기
화면
메뉴설명수어
켜짐
꺼짐